기하학과 물리학

1. 기하학의 종류와 유래

보통 기하학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고대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 (영어명: 유클리드)가 원론으로 집대성한 논증기하학일 것입니다. 무려 기원전 300년 경 만들어진 이 저서는 사람 손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작도를 담아놓았으며 기하학 뿐만 아니라 정수론의 명제까지 포함하여 총 465개의 명제를 10개밖에 되지 않는 공리로 유도해내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수학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이 엄청난 책은 그로부터 2000년이 넘게 지난 20세기까지 기하학을 가르치는 중요한 교과서로 쓰이게 됩니다.  기억이 잘 안날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도 중학교 시절까지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을 열심히 배워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의 다각형부터 시작하여 중학교 2학년 2학기의 본격적인 도형의 성질들 (평행사변형, 마름모 등등) 까지 애증의 관계로 기하학을 대해왔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서서 2학기가 되면 참신한 충격을 맛보게 됩니다. 그전까지 컴퍼스와 눈금없는 자로 설명하던 기하학이 갑자기 x와  y같은 이상한 문자들을 이용하여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도형은 좋아하는데 함수는 싫어하는 학생들에겐 더 큰 충격과 공포를 선사합니다. 그림만 그릴 뿐만 아니라 직선이라고 읽고 일차함수로 쓰여있는 녀석과 원의 거리를 구해서 접선이냐 아니냐 따지질 않나 여러가지 함수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녀석을 도형이라고 그리라질 않나 여러모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해석기하학'의 시작입니다.

    해석기하학은 데카르트가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법, 철학, 수학, 신학, 정치, 기상학 등 거의 손을 안댄 분야가 없을 정도로 Generalist 였습니다. 그는 법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법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대학도 법학과에 진학하여 법률학과 철학을 더욱 심도있게 공부하였고 이 시기 수학 및 자연과학 등도 접하게 됩니다. 특히 수학에 관심을 많이 보인 데카르트는 지식중에 오로지 수학만이 명증적인 지식이라 생각하며 더욱 더 몰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윽고 학문들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 데카르트는 세상에 나가 실질적인 지식을 얻곘노라고 학교를 나서게 됩니다. 졸업을 하자마자 데카르트는 아주 특이하게도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네덜란드로 가게 됩니다. 때마침 30년 전쟁이 일어났고 데카르트 역시 참전하게 됩니다. 실질적 지식을 얻으려 한 데카르트는 특이하게도 이 경험에서 학문적인 지식들에 영감을 받게 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속설로는 이때 들판에 누워서 별의 위치를 주변 사람에게 설명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가 2차원 직교 좌표계를 생각해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때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혹자는 병원에 누워있을때의 파리의 움직임을 보고 생각해냈다고 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데카르트는 이 전쟁에서 해석기하학의 실마리를 얻었고 제대 후 몇 년동안 순수수학에 매진하면서 해석기하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을 열게 됩니다.

    해석기하학의 의의는 상당히 큽니다. 그 전까지 별개로 존재하던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을 처음으로 한 데 묶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기하의 문제를 대수적 방식이나 해석적 방식으로 풀게되고 반대로 어려운 방정식 문제를 도형으로 쉽게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좌표계의 발명은 그렇게나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수학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뉴턴과 라이프니츠라는 두 명의 천재가 바통을 이어받게 됩니다.
뉴턴은 기하에서 시작하여, 라이프니츠는 함수에서 시작하여 둘은 미적분학이라는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미적분학은 워낙 유명하고 그것에 대한 얘기만 하나의 글로 담아야 할지라 여기서는 간략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둘의 공로는 이후 미분기하학이라는 현대 수학의 하나의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분기하학을 통하여 현대 물리학의 거대한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2.물리학의 기하학

뉴턴의 미적분학으로 인하여 물리학은 수학이라는 방대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엄청난 황금기를 이룩하게 됩니다.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별들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되고 그 전까지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모두 하나로 정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류의 지성은 그전까지와는 다르게 폭발적으로 그 경계를 넓혀갔고 비로소 과학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뉴턴의 후광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그에 가려져 있던 의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뉴턴역학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절대 좌표
  • 원격 작용
  • 수성의 세차운동 오차
    뉴턴은 절대적인 좌표계를 상정하여 그로부터 모든 운동을 기술하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직관과 아주 잘 맞아떨어졌고 사람들은 딱히 의문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맥스웰 방정식, 마이컬슨-몰리 실험 등을 거치자 큰 모순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로 뉴턴의 역학에는 원격 작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물체라도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만유인력이라는 힘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과도 위배되므로 뉴턴 역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뉴턴역학 만으로는 수성의 세차운동을 정확히 구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관측오차로 치부했지만 관측기술이 아무리 늘어도 세차운동의 오차를 보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점점 의문을 제기하였고 뉴턴 역학은 점차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아인슈타인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 좌표계를 뒤집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들고 나타납니다. 오직 빛의 속도 만이 절대적이며 모든 것은 관측하는 관측자에 의존하였습니다. 심지어 한 관측자에게 동시가 다른 관측자에겐 동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상한 이론을 심지어 베른의 일개 특허국 직원이 들고왔으니 당연하게도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실험결과와 점점 부합해가자 사람들은 점차 믿기 시작하며 아인슈타인은 스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십여년이 흐르고 그는 또 하나의 이론을 완성하여 들고오게 됩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빛을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이 이론은 시공간과 중력을 메인으로 다뤘습니다. 이 이론이 바로 '일반 상대성 이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설명하였고 이로서 뉴턴의 원격 작용을 뒤집게 됩니다. 이때 휘어짐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인슈타인은 동료 수학자들의 도움을 빌어 '미분 기하학'이라는 당시에 물리학자들에게 생소했던 학문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매우 탁월한 선텍이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전까지의 모든 이론들보다도 정밀하게 들어맞았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던 수성의 세차운동을 아주 완벽히 설명해냈습니다. 더불어 중력렌즈, 블랙홀, 중력파 등 그 전까지는 제시되지 않았던 개념들을 제창했고 입증되었습니다. 무려 중력파는 2016년에 와서야 관측되게 됩니다. 이렇게 일반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더불어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 덕택(?)에 이제 모든 이론물리학자들은 '미분 기하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필수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물리학 학부에서도 미분기하학을 다루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호불호는 심각하게 갈리는 것 같습니다.

    이제 현대물리학에서는 비단 상대성 이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 기하학이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양자역학 역시 기하학으로 설명 되었으며 열역학, 통계역학, 전자기학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기하학으로 설명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더 나아가 양자장론에까지 영향을 끼치니 이제는 물리학과 기하학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 물리 현상이 없더라도 우아한 기하학 설명을 넣어 이론을 발전 시키는 쪽도 있는데 그것의 극단에 이른 학문이 초끈이론입니다. 최근에는 물리학 뿐만 아니라 각광받는 머신러닝에까지 '정보 기하학'이라 불리는 학문이 넘보는 정도니 기하학은 거의 바퀴벌레처럼 모든 곳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음.. 유래만 말했는데 벌써 글이 꽤나 쌓였네요. 다음부터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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